사람아, 사람아
다시 한 해를 보내는 것이 눈앞이다. 사람은 견딜 줄 아는 동물이기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아직도 지난여름의 폭염과 열대야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기에 사람이다.
지난 11월엔 특이한 기사들이 우리를 슬프게 했다.
준비되지 못한 채 노후를 맞이한 우리나라 노인은 절반 가까이가 빈곤층이다. 가난은 질병과 외로움 등 노년의 고통을 더 힘들게 한다. 불편한 몸으로 남의 밭일을 하는 농촌 노인이나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노인은 죽을 때까지 밥벌이의 구차함에 휘둘린다.
지난 9월 부산 도심의 한 주택가 쪽방에서는 67세의 여자 노인이 숨진 지 5년 이상 지난 백골상태로 발견됐다. 옷을 아래위로 8~9겹이나 껴입고 목장갑을 낀 채 반듯하게 누워있던 것으로 보아 난방이 되지 않는 방에서 굶주려 숨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사람아, 사람아. 가족이 있었을 텐데 부모를 그렇게 방치해도 되는가. 혼자 핵가족의 살기도 힘든데 무슨 얘기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터인 즉 사람의 삶은 그런 게 아니다. 비 오는 날도 햇빛 비치는 날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게 사람 아니더냐.
가난하고 외로운 삶은 죽음마저 고독사로 끝나는 예가 늘고 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다가 고독한 죽음을 맞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의 통계를 보면 전국적으로 810건의 무연고 사망자 유해가 발견됐는데, 공식집계는 아니지만 상당수가 65세 이상 노인의 고독사로 추정되고 있다.
60세 이상 고령자 10명 중 7명이 자녀와 함께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통계청의 조사에서 나타났다. 고령자의 사회활동이 늘어서 남의 도움 없이 사는 데 익숙하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자녀 결혼을 시키고 나면 비축해 둔 돈은 없고 누가 60세 이상의 고령자를 채용하려고 할 것인가. 결국 고독사로 가는 길목에 설 수밖에 없다.
사람아, 사람아. 지난 11월에 보도된 반인륜 범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울산에서 계모가 8살 난 의붓딸의 갈비뼈 16개를 부러뜨려 살해했고, 50대의 딸이 76세 노모를 폭행하여 갈비뼈 12개를 부러뜨려 숨지게 한 사건은 우리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사건들을 보면서 나는 사람의 갈비뼈가 24개인 것을 알았다. 이렇게 보면 사람아, 사람은 얼마나 잔혹한 것인가.
한편 지난달 울산시에서 40세 계모가 “친구들과 소풍을 가고 싶다.”는 8세 의붓딸의 머리와 가슴을 주먹과 발로 때려 숨지게 했다. 몇 나쁜 계모가 요즘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여덟 살 의붓딸에게 소금밥을 먹여 나트륨 중독으로 숨지게 한 계모는 징역 10년 형을 선고 받았다. 소금밥을 먹다가 토사물이 생기면 그 것조차도 다 먹도록 했다니 할 말을 잃는다.
10년쯤 전에 희한한 자살 사건이 있었던 것을 칼럼으로 쓴 일이 있다. ‘네모자녀 동반 투신’에 대한 인터넷 카페에 단상을 썼는데, 그 엄마의 입장에 동정하는 글이 주일 뿐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세 자녀의 죽음을 간과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비정한 엄마’라는 신문기사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이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자녀를 아파트의 계단바닥에서 창문틀까지 높이가 1미터가 넘는데도 집어던지는 괴력은 비정함이 아닌가.
세모가 가까워지는데 좀 좋은 소식도 막연히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