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경제론은 평화의 덫이다

2005-03-30     김승석 논설위원

주일(駐日) 미군기지의 75%가 밀집해 ‘밀리터리 아일랜드’(軍島)로 불려져 왔던 오키나와 섬. 섬 주민들이 미군기지에 고용되거나 또는 미군과의 거래를 통해 생활하여 왔던 이유로 이른바 ‘기지(基地) 경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그 섬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2000년 7월 G8(선진 7개국, 러시아) 정상이 오키나와 휴양지 부세나 해안에 모여 세계경영을 논의하는 국제회의 섬으로 변신했다.

그런데 지난 1월 27일 정부가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 선포하였음에도 최근 해군본부는 2002년 제주도민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유보됐던 남제주군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을 2014년 완공을 목표로 다시 추진키로 하는 건설계획안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본부가 만든 홍보책자에는 특히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총 8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것이라며 주민설득에 나섰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해양수산부가 제주지역 투자할 총예산 규모가 8700억원인 점을 감안할 때 가뜩이나 어려운 제주경제의 입장에서는 군침이 도는 투자라 할 수 있다.

또한 해군기지가 예정대로 건설될 경우에 하순항에 주둔하는 해군부대의 연간 예산은 남제주군 1년 예산 2659억원과 비슷한 규모로 지역경제에 순기능을 가져온다면서 이른바 기지경제론을 내세우고 있다.

오키나와 섬의 경우, 미군 기지경제 의존도는 연차적으로 낮아져 1996년 기준으로 4.9%에 불과하고 상대적으로 중앙정부에 대한 재정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청년(15-29세) 실업률이 전국 평균보다 2배 정도 높은 점과 자립경제기반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은 제주도와 닮은꼴이다.

우리가 미래의 성장 동력을 찾아내지 못하고 또한 현실적으로 배고프다고 해서 해군기지 건설을 수용한다는 것은, 뭇 생명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제주의 섬사람들이 선택할 바가 아니다. 비록 여정이 멀고 험하다고 하더라도 경제 자립화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안보 또는 경제논리를 앞세워 생명,평화에 대한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겠다는 해군의 인식은 제주사회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데 있다고 본다. 오히려 군항건설이 글로벌 경제 체제하에서 암(癌)적 요소가 되어 민간 투자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자립경제 기반을 구축하려면, 토착형 중소기업의 혁신적 기업 활동을 지원해주어야 한다. 선진국 이태리 경제의 버팀목은 경쟁력을 갖춘 튼튼한 중소기업이다.
현행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는 미화 1000만 달러 이상의 대투자자에게 법인세 감면 등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규정은 있어도, 중소기업의 투자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전혀 없다.

제주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오키나와는, ‘오키나와 진흥개발특별조치법’에 중소기업의 창조적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기계와 장치 또는 건물 등을 취득하거나 임대하는 경우에 법인세의 일부를 면제해주고 있고, 고용촉진 및 직업안정을 위한 특별 규정을 마련하여 청년층 신규 취업자의 고용창출을 도모함으로써 섬사람들의 육지 전입을 차단하고 있다.

이제라도 제주도정은 외국인대학 유치 등 대박의 꿈에서 깨어나 창의성 있는 중소기업들의 활동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