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땅 이야기

2005-03-23     조정의 논설위원

 정부는 부동산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다시는 이 땅에 부동산 투기가 발붙일 수 없을 것이라고 기염을 토한다. 참말로 그랬으면 왜, 아니 좋으랴 마는 최근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땅 이야기들은 투기와 부동산정책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가 투기억제정책이라는 말을 들은 게 한두 번이었을까.
요즘 들어 고위공직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심심찮게 회자된다. 정부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공직자는 땅 투기 의혹에 발목이 잡히고, 이거야말로 엇박자 행진이다. 경제부총리가 땅 문제로 자리를 떠나더니 이번에는 국가인권위원장도 땅 투기 의혹으로 발목이 잡힌 모양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모양새가 똑 같을까. 위장전입과 투기행위를 한 장본인이 부인인 것이 꼭 닮았다. 경제부총리가 투기 의혹으로 자리를 물러났을 때 대통령은 해일에 쓸려가는 사람을 붙잡지 못하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마침 남부 아시아를 휩쓸고 간 ‘쓰나미’의 환영이 채 지워지기 전이라 해일처럼 일어나는 여론을  잠재우지 못한 아쉬움을 솔직하게 토정한 것으로 받아드리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경제부총리가 물러가고 이제 잠잠해 지는 가싶었는데 난데없이 국가인권위원장의 땅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이번엔 청와대에서도 별 말이 없었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버금가는 자리들을 땅 때문에 물러가는 뒷모습이 처연하기 그지없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린데 땅 몇 마지기 때문에 물러나다니…. 하기는 몇 마지기가 아닌 몇 천 평이라는 말이 들리기도 하지만 우리네야 겉보리 한 마지기도 가진 게 없으니, 몇 마지기로 가늠하는데 길들여져 왔다.
땅의 넓고 좁은 게 대수일까 마는 신문마다 ‘헤드라인’으로 등장하는 공직자의 땅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슬프게 한다. ‘새는 먹이를 찾다가 죽고 사람은 재산을 모으다가 죽는다’는 중국 속담이 현실적으로 받아드려지는 게 작금의 세태다.

공직자에게는 명예가 주어진다. 설령 남산골샌님처럼 굶기를 밥 먹듯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공직자는 명예를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공직자에게 주어진 명제가 청렴결백이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 관리는 살찐 말을 타서는 아니 된다고 했다. 이렇게 명예는 청렴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땅에 대한 말이 나오기만 하면 아내가 한 일이라 잘 모른다는 궁색한 변명에 급급해 하는 공직자들의 모습이 영 안쓰럽다. 위장 전입한 것은 사실이나 투기는 아니라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정녕 그럴까.

위장은 거짓을 꾸미는 일이다. 이 말은 전술적으로 더 많이 쓰인다. 전술적으로는 적이 눈에 뜨이지 않게 병력이나 장비, 시설 따위를 꾸미는 것을 일컫는다. 현행법은 투기자들에게 특혜를 주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위장전입으로 주민등록을 옮겼다가 투기가 끝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법의 맹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면 투기가 성립되는 것이다.
누구는 잠시 위장전입이라는 묘법으로 주민등록을 옮겼다가 돌아오기만 해도 재산이 하늘만큼, 땅만큼 불어나는데 우리네는 죽어라 뛰어도 삶이 나아지지 않으니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기원전 ‘피타쿠스’는 폭군을 몰아낸 공으로 시민들이 그가 점령한 땅을 마음대로 가지도록 결의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창을 던져 그 창이 덜어지는데 까지만 땅을 차지했다.

로마의 ‘푸블리우스’ 역시 비슷한 제의를 받았으나 자기가 하루에 갈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지체불구자였다. 절름발이가 하루에 밭을 갈면 얼마나 갈 것인가. 땅 때문에 발목이 잡혀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공직자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