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법원장도 사외이사만 되면 '거수기'
300대 상장사에 법조인 137명 포진…전문성 발휘 못하고 독립성도 의심
2013-09-25 제주매일
웅진코웨이 등 웅진그룹 5개 상장사는 전직 헌법재판관과 법무연수원장 등을 사외이사로 선임했으나 이들은 회사가 이 지경이 되도록 이사회에서 '거수기' 역할만 했다.
퇴직한 뒤 사외이사로 영입된 판·검사가 수백명에 달하지만 전문성과 대주주로부터의 독립성을 바탕으로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데 보탬이 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300대 기업이 사외이사로 선임한 법조인은 137명(올해 상반기 기준)이다. 전직 판사와 검사, 변호사, 법학 교수 등을 포함한 수치다.
이 중 상당수는 고위 공직을 지냈다.
김문희, 이상경, 주선회 씨 등 전직 헌법재판관이 3명이고 김도언, 송광수, 이명재, 정구영, 정상명 씨 등 전직 검찰총장이 5명이다. 지방법원장과 고등법원장 출신도 9명이나 됐다.
이밖에 인적 네트워크가 폭넓기로 유명한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전·현직 변호사가 15명에 달해 주목된다.
이들이 법조인으로서 최고 수준의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지난해 자신이 속한 상장사의 이사회에서 그 전문성을 바탕으로 주요 안건을 뒤집은 사람은 없었다.
대주주로부터의 독립성을 의심할 만한 사례도 있다. D 변호사는 2004년 횡령 혐의로 기소된 한 기업인을 변호해 집행유예를 받아냈다. 이어 그 기업인이 회장인 상장사의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1998년 초 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는 대주주나 경영진과 이해 관계가 얽히지 않은 전문가를 회사 의사결정기구에 참여시켜 경영 투명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도입 취지와 달리 사외이사가 권력형 로비 창구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법의 지배'를 이끄는 법조인이 제도의 변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한 중견 판사는 "현직에서 중요한 기업 민·형사 사건을 많이 맡은 법관은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퇴직 후에 사외이사 등을 맡지 않고 자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