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예방을 위한 지역공동체의 역할(민덕희)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툴롱 감옥에서 19년간 강제노역에 종사한 장발장이 다시 범죄의 나락에 떨어지지 않고 어여쁜 코제트의 아버지로 편안히 눈감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난생 처음 경험한 미리엘 주교의 따뜻한 마음이 주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불씨가 되어 고위험 보호관찰 대상자 장발장은 선량한 이웃으로 변화된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잔혹한 성폭력과 살인사건들. 심지어 섬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아름다운 제주도, 그 휴식의 공간에서 발생한 올레길 살인사건 등이 오늘도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국가는 그에 대한 해답으로 전자발찌, 신상공개, 약물치료 등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제도를 지난 수년 사이에 시행하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물리적 거세, 사형집행을 원하는 온라인 대중의 정서에서 중세의 마녀사냥과 같은 섬뜩한 광기를 느끼는 것은 나 혼자뿐일까?
돌이켜보면 팔순 노모의 아들이며 40대 중반, 무직의 독신남성인 올레길 살인사건의 범인도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 가운데의 레미제라블이었다.
우리는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초가집 대신 아파트, 시골길 대신에 고속도로를 택하는 값으로 화목한 가정, 이웃 간의 정, 포근한 마을공동체라는 여러 소중한 가치를 포기하였다. 그에 따른 인간소외의 병폐가 범죄의 원인이라면 최선의 예방책은 CCTV의 추가 설치보다는 이웃의 따뜻한 마음과 손길의 제도화일 것이다.
그렇다면 두 눈을 부릅뜨고 24시간 시민의 안전과 정의를 수호하는 자베르 경감의 역할은 보호관찰관이 맡겠다. 은 접시에 더하여 은촛대마저 안겨주는 미리엘 주교의 따뜻한 마음은 지역공동체가 보여주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지난 6월 25일 「제주특별자치도 보호관찰 등 대상자에 대한 사회정착 지원 조례」가 열 달의 산고 끝에 제정되었다. 지역사회가 범죄자에 대한 지원을 제도화한 첫 사례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열린 마음에 경의를 표하며 이 조례가 설문대할망의 오백장군 아들들이 더 넓은 괸당으로 범죄 없는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보호관찰관은 오늘도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라는 시구를 되뇌며 ‘범죄자,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때 변화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다짐한다.
제주보호관찰소 관찰과장 민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