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풍경 뒤로한 채 '제주의 바람' 되다

8번째 탐방- 박훈일 관장

2013-07-04     박수진 기자

"사진을 계속할 수 있는 한 나는 행복할 것입니다. 살아 있음에 끊임없이 감사할 것입니다. 나의 사진 속에는 비틀거리며 흘려보낸 내 젊음의 흔적들이 비늘처럼 붙어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좌절, 방황, 분노... 내 사진은 내 삶과 영혼의 기록입니다" -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

오로지 제주에 미쳐 살다간 이가 있다. 세상이 떠난 지 8년이 지났지만 그가 남긴 사진들은 우리 곁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제주를 너무나도 사랑한 故 김영갑 작가. 김 작가는 초원을 떠돌다가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제주의 풍경을 뒤로한 채 영원한 제주의 바람이 됐다.

4일 그의 제자인 박훈일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관장(44)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김영갑 작가의 채취는 일부로 찾지 않아도 갤러리 곳곳에 베여있었다.

2002년 8월 문을 연 이 갤러리에서는 김영갑 작가가 20여 년간 카메라 앵글에 담아낸 '제주'를 볼 수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지만 갤러리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박훈일 관장은 김영갑 작가의 제자다. 갤러리가 만들어질 때 옆에서 박 관장이 도왔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장을 맡게 됐다.

그는 "선생님은 루게릭병 판정을 받고 난 후 성산읍 삼달리의 폐교(옛 삼달분교)를 임대해 갤러리를 꾸몄다"며 "한라산의 옛 이름인 '두모악'을 따서 갤러리를 개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갤러리 오픈 초기 때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개관 초기 때는 하루에 관람객이 20~30명 정도 밖에 오지 않았다"며 "그러다 조금씩 입소문이 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평균 200명 정도가 갤러리를 찾는다. 가끔 400~500명이 방문할 때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에게 김영갑 작가와의 인연을 물었다.

그는 "저희 집 옆에 김영갑 선생님이 살게 됐다. 자연스럽게 선생님을 '삼촌'이라 부르며 사진을 배워달라고 따라다녔다"며 "저에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진작업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제게 화두와 같은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선생님은 저에게 답을 가르쳐 주지 않고 최소한의 방향만 알려줬다"며 "작업하는 사람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항상 하셨다"고 기억을 되새겼다.

김영갑 작가는 살아생전 용눈이 오름과 관련 작업을 많이 해왔다. 20년 동안 용눈이 오름만을 쫓아다녔지만 카메라 렌즈에 다 담아내지 못했다. 그만큼 용눈이 오름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다.

그는 "용눈이 오름 주변이 난개발이 돼 안타깝다"며 "갤러리가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지면서 개발이 가속화 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김영갑 작가의 사진이 실려 기쁘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선생님을 알게 돼 너무 기분 좋다"며 “앞으로도 선생님 이름 세글자가 더욱더 알려졌으면 한다”고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갤러리는 우리 모두가 주인이다. 선생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많은 분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갤러리는 지켜낼 수 있었다"며 "선생님이 지키고자 했던, 하고자 했던 많은 일들이 이제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故김영갑 작가는 1957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나 1982년부터 제주도를 카메라 앵글에 담기 시작하더니 1985년에는 아예 제주에 정착했다.

20여 년간 제주의 풍경을 담아낸 그는 언제부터인가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희귀병 루게릭병에 걸린 것이다. 투병생활 6여년만인 2005년 5월 29일 끝내 세상을 등졌다.

김영갑 작가는 한줌의 재료 변해 자신이 심은 갤러리 정원 감나무 아래에 뿌려졌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437-5번지. 매주 수요일과 설날 그리고 추석 당일은 휴관.

어른은 3000원, 청소년과 제주도민 등은 2000원, 어린이는 1000원이다. 장애인과 성산읍민은 무료.

관람시간은 3~6월과 9~10월엔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 여름인 7~8월엔 오후 7시까지, 11월~2월엔 오후 5시까지.

문의)064-784-9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