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 사실상 4·3 주민 학살 방조”
“미군정, 사실상 4·3 주민 학살 방조”
  • 고상현 기자
  • 승인 201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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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포럼서 브루스커밍스 교수 “정부 지지 않으면 무자비 탄압”
존 메릴 前동북아국장 “국정교과서에 이승만 ‘영웅’ 언급 걱정돼”
▲ 브루스 커밍스(73) 미국 시카고대학교 석좌교수(역사학)가 지난 21일 제주 4‧3평화포럼에서 제주 4‧3사건 당시 주민 수만여 명이 학살당한 배경에는 미군정과 남한 내 극우파 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이날 제주칼호텔에서 강연하는 모습.

미국의 대표적인 동북아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73) 미국 시카고대학교 석좌교수(역사학)가 지난 21일 제주 4‧3평화포럼에서 제주 4‧3사건 당시 주민 수만여 명이 학살당한 배경에는 미군정과 남한 내 극우파 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미군정이 대규모의 주민 학살로 상황이 악화하는 과정을 사실상 묵인하고 방조했다”고 밝혀 많은 희생자를 낳은 제주 4‧3사건에 대한 미국의 책임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커밍스 교수는 “(4‧3사건의 실마리가 된) ‘3‧1절 발포 사건’ 이후 도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미군정과 이승만은 제주도 지사를 비롯한 군정 수뇌부를 전원 외지인으로 교체했다”며 “미국 방첩부대 자료에 따르면 그 당시 제주도 지사였던 유해진은 극우파 인물로 서북청년단 등 우익세력과 연결되고 있었다. 그는 (발포 사건 직후 발생한) 3·10 총파업 참여자 등 이승만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자는 ‘빨갱이’로 보고 무자비하게 탄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외에도 식량 배급 비리 등의 폭정으로 미군 조사관이 유 지사를 해임할 것을 미군정에게 요청했지만, 미군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결국 1948년 4월 3일 수세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이 무장 투쟁을 일으키기 전까지 사실상 사태가 악화하는 것을 방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4‧3사건이 발발하고 나서도 미군정은 진압 감독, 반란 진압군 일상훈련, 수감자 신문 등의 방식으로 직접 개입했다”고 말했다.

존 메릴(72) 전 정보조사국 동북아국장도 같은 날 4‧3평화포럼에서 “미군정 아래 남한 사회에서 미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4‧3사건이 발생했다”며 “당시 미국의 군사고문들은 제주 곳곳에 있었는데 이들이 당시 이승만 정부의 초토화 정책 등으로 인한 학살을 막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에 나오는 새로운 국정교과서에서 학살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이승만을 국부나 영웅으로 만들까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한편, 정부에서 내놓은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군‧경 토벌대가 4‧3사건 민간인 희생자 1만4028명 가운데 1만955명(78.1%)을 죽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10세 이하 어린이 814명(5.8%), 노인 860명(6.1%), 여성 2985명(21.3%)이 토벌대에 의해 희생돼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과도한 진압작전이 전개됐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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