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비들의 담론장 노인 휴식공간 변모
옛 선비들의 담론장 노인 휴식공간 변모
  • 고상현 기자
  • 승인 2016.0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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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 들여다보기 ‘오현단·향로당’
서원철폐령에 허물어진 '귤림서원' 자리
제주 최초 노인정 '제주향로당' 둥지 틀어
▲ 조선시대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고 제주 학문발전에 공헌한 오현(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우암 송시열)을 기렸던 장소인 오현단. 현재 이곳 입구에는 제주도 최초의 노인정인 제주향로당이 자리하고 있다.

바둑알 굴리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16일 오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오현단. 제주성 성곽을 따라 오래된 소나무들이 파수꾼처럼 서 있는 이곳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고, 제주 학문 발전에 공헌한 오현(五賢)을 기리던 곳이었다. 지금은 제주도 최초의 노인정인 ‘제주향로당’이 다섯 명의 옛 선인을 기리는 비석들과 함께 서 있다.

이날 제주향로당에는 노인들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삼삼오오 짝을 이뤄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근처 동문시장에서 건어물을 판다는 김지천(72)씨는 “일하다가 한가해지면 여기 와서 바둑을 둬. 65살 넘으면 여기에 아무나 올 수 있어. 동네친구들이랑 이렇게 놀고, 이야기 나누고 얼마나 좋아”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 이곳 제주향로당 자리에는 제주 최초의 사립대학인 ‘귤림서원’이 있었다. 이곳에 오현(五賢)인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을 봉향하기 위해 세운 ‘충암묘’와 학생들을 가르쳤던 ‘장수당’이 함께 있었다. 이곳에서 많은 제주의 선비들이 학문을 갈고 닦았다.

하지만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나라 안에 서원이 너무 많다며 ‘서원철폐령’을 내리면서 허물어졌다. 1892년 제주 유림이 오현의 뜻을 후세에 기리고자 5개의 비석을 세우면서 ‘오현단’이 만들어지고, 1955년에 창설돼 쭉 제주성 남문에 있던 제주향로당이 도로 공사로 1975년 이곳에 옮겨오면서 현재의 모습이 됐다.

 

■ 영주음사

지금은 65살 이상이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향로당은 초기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다. 이재천(83) 제주향로당회장은 “처음에는 한학을 가르쳤던 ‘귤림서원’이 있던 곳이다 보니 한학에 능통한 사람만 올 수 있었어. 여기 와서 한시도 짓고, 서로 들려주고 그랬지. 글을 배울 수 없었던 가난한 서민들은 아무래도 이곳에 들어오지 못 했어”라고 했다.

1980년대 제주 마을마다 노인정이 들어서면서 향로당도 지금처럼 학식에 상관없이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 됐다. “아무나 와서 지금처럼 바둑 두고 얘기 나누면서 놀고 그러니깐, 그전부터 계셨던 분들이 ‘영주음사’라는 한학 연구 모임을 만들어서 따로 나가버렸지.” 그 이후로 향로당은 현재처럼 서민층 노인들의 휴식 공간이 됐다.

 

■ 장락무극

향로당 벽에는 '오랜 즐거움에는 끝이 없다'는 의미의 ‘정락무극’이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있다. 이날 다른 사람들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김인병(91)씨는 “젊었을 때 전쟁으로 아무것도 없던 나라에서 가족을 부양하려고 넝마주이도 해보고, 막노동도 했어. 그렇게 해서 자식들 다 키워냈지. 이제는 저 말(장락무극)마따나 죽기 전까지 여기서 소소하게 즐겁게 지내다 갈 거야”라고 말했다.

김씨 옆에 앉아있던 이진모(81)씨도 “나이 들면 주변 사람들 하나둘씩 떠나 외롭거든. 여기 오는 사람들이 대개 다 혼자 살아. 이곳에서 함께 대화도 나누고 바둑도 두면서 남은 인생 살다가 가는 거지”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날 오후 성벽과 고목들과 옛비석들로 둘러싸인 오현단을 나서면서도 바둑알의 자그락거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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